겨울 길거리, 군고구마 장수의 작은 판자 간판.
그 위에 정성스럽게 쓰인 '군고구마'라는 글씨.
이 소박한 글씨 앞에서 한 노인이 멈춰 섭니다.
"난 언제 저렇게 써 보나..."
그의 눈빛에는 경외와 부러움이 어립니다.
누구일까요,
이 노인은?
바로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 불린 무위당 장일순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장일순은 누구인가?
장일순. 이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긴 사람
'녹색평론' 김종철이 한 번 보고 반한 사람
판화가 이철수가 '이 시대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 부른 사람
그가 바로 장일순입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그를 존경했을까요?
장일순의 생애: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다
1928년, 일제강점기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장일순.
그의 생애는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다
서울대 미학과 입학, 6.25로 중단된 꿈
고향 원주에서 평생을 보내다
왜 서울에서 공부하던 그가 원주로 돌아왔을까요?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는 자신의 뿌리,
그리고 민중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장일순의 다면적 활동: 교육에서 민주화까지
장일순의 활동 영역은 실로 다양했습니다.
교육운동가:
1954년 원주에 대성중·고등학교 설립
사회운동가:
1960-70년대 농민, 노동자를 위한 협동조합운동
민주화운동가:
반독재 투쟁의 정신적 지주 역할
생명운동가:
1980년대 '살림'의 문화를 만드는 생명사상 전파
이 모든 활동의 근간에는 그의 독특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동학': 장일순 사상의 핵심
장일순의 사상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그의 사상은 다양한 원천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불교, 유학, 노장 사상에 조예가 깊었음
특히 동학의 해월 최시형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음
이러한 다양한 사상의 융합은 그를 '걸어 다니는 동학'이라 부르게 만들었습니다.
'걸어 다니는 동학'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장일순이 동학의 사상을 단순히 이론으로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실천했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동학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살아있는 매개체였던 것입니다.
장일순의 예술: 삶이 곧 예술
장일순은 뛰어난 서예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서예관은 그의 인생관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며, 글은 삶에서 나와야 한다"
그에게 진정한 예술은 화려한 갤러리의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상 속 소박한 글씨,
예를 들어 음식점의 메뉴판이나 길거리 간판 속에서 진정한 예술의 정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바로 '삶과 예술의 일치'입니다.
장일순에게 예술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장일순의 유산: 현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장일순은 1994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상과 실천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운동의 확산
생명운동과 환경운동의 철학적 기반 제공
대안교육의 모델 제시
특히 그의 '살림' 사상은 현대 사회의 과도한 물질주의와 환경 파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살림' 사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살림' 사상은 단순히 집안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철학을 의미합니다.
우리 시대에 다시 읽는 장일순
2024년, 장일순 서거 30주기를 맞아 새로운 평전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가 극에 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장일순의 가르침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동체의 가치
자연과의 조화
삶과 예술의 일치
이 모든 것들이 장일순이 우리에게 남긴 귀중한 유산입니다.
장일순, 우리 시대의 스승
"난 언제 저렇게 써 보나..."
군고구마 간판 앞에서 장일순이 던진 이 말은 단순한 부러움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평생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며 살아온 한 위대한 사상가의 겸손한 고백이자,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진실되게 살고 있는가?
우리의 말과 행동은 얼마나 일치하는가?
우리는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장일순의 삶은 이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쩌면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장일순,
그는 걸어 다니는 동학이자,
살아있는 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가르침은 우리와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